1. Un Mot Pour Un Autre
2. Le Diable Au Coeur
3. Elle Voit
4. Ne Laissez Pas Le Soleil Se Coucher
5. Mon Coeur Dans Les Etoiles
6. C'es Beaucoup Mieux Comme Ca
7. Ten Va Pas
8. Le Geant De Papier
9. Le Coeur A L'italienne
10. I Believe In Love
11. On N'oublie Jamais Vraiment
12. Mourir A Toulouse

아름다운 서정성과 순수한 목소리를 지닌 샹송가수 장 자끄 라퐁의 85년작 [Le Geant De Papier (종인거인)]. 지극히 아름다운 멜로디와 감성적인 팝 사운드가 앨범 전체를 수놓고 있는 이 앨범은 80년대 특유의 정감어린 정취가 묻어있는 작품이다. 샹송의 부드러운 느낌과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추천작.

샹송은 이제 흘러간 타령?

미국 음악, 또는 영어권 음악의 전 세계적 지배현상은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그들의 판도가 넓어질수록 오히려 한국팬들과는 점점 데면데면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청계천을 뒤져가며 이른바 '빽판'으로 불리던 해적판을 구입하던 인구가 만만치 않았고, 어두운 국내 정치를 왜곡된 쇄국정책으로 얼버무리려 했던 그 무시무시한 유신치하에서도 팝 뮤직의 기세는 당당하기만 했다.
비록 골라 들을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좁았지만 오히려 수용하려는 폭은 넓어 영어 음악 뿐만 아니라 '분위기' 덕에 더욱 고급스럽게 여겨진 유럽 음악들도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이후 팝 뮤직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유럽 음악은 거의 한국땅에서는 고사하다시피 한 것 같은 느낌이다. 90년대 들어 많이 '세계화'되었다지만 그것은 결국 '미국화'의 의미확대일 뿐이다. 전세계의 미국화에 대해 가장 많이 속상해 하는 나라는 프랑스가 아닐까? 문화적인 면에서는 훨씬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으로 자국어에서 일체의 외래어(주로영어)를 몰아내자는 정책을 강경하게 편다든지, 영어로 말을 거는 관광객에게는 빳빳하게 고개들고 불어로 대답하는(영어를 몰라서 그런다는 설이 더 지배적임) 모습등은 그들의 자존심과 시대착오를 한꺼번에 드러내는 사례로 흔히 인용된다.
그러나 어떻게 행동한다 해도 대세는 이미 그들 편이 아닌 것같다. 시적인 가사와 서정적 멜로디의 절묘한 결합으로 추앙받던 샹송은 이미 60년대에 프렌치 팝이라는 장르로 변질되어 말만 불어인 상태이고, 국민적 산업인 영화는 할리웃의 강공에 계속 침식당하며 겨우 버텨내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인들에게 샹송은 아직도 60년대나 70년대에서 머물러 있는 중이다. 그 시절에는 한국을 찾아주는 샹송 가수들이 있을 정도였지만 그들 대부분은 프랑스의 젊은 세대들조차 기억을 못하는 이름이 되었다. 90년대에 샹송의 새로운 기수로 한국에 소개된 빠뜨리샤 까스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오히려 앨범 판매고가 높은 특이한 케이스로 꼽힌다.
최신 프랑스 음악이 제대로 소개가 안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요엔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거론했듯이 팝 뮤직도 판도가 좁아진 판에 음악적으로, 언어적으로 낯선 프랑스 음악은 이래저래 얼굴 들이밀 공간이 없다. 그리고 프랑스 음악=샹송이라는 공식 하에 한국인들이 품고 있는 서정적인 샹송에 대한 이유없는 향수가 최신 음악에 대해 정을 줄 기회의 폭을 좁히게 된 것이다.

잊혀진 샹송의 정감 재현한 장-자끄 라퐁.

이런 세월과 감각의 빈 공간을 메워줄 수 있는 대안으로 장-자끄 라퐁을 소개한다. 가을날의 시 같은 이런 음악을 일상생활에서 접한지 참 오래되었다. 실험적이라는 형태의 서먹서먹한 음악, 젊은 입맛에 잘 들어맞는다는 어수선한 음악, 철학과 메시지가 과격하게 점철된 부담스러운 음악, 표현 자유시대를 구가하는 낯뜨거운 표현의 음악이 사방팔방 난무해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며 힘없이 귀를 내맡기고 있지만 라풍의 음악은 그 질풍노도 속에서도 한자락 따뜻하게 듣는 이들의 귀를 감겨온다.
라풍온 한국에 그리 잘 소개된 뮤지션은 아니다. 1959년 뚤루즈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음악가도 아니고 의학 공부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가끔 취미로 무도회 등에서 노래를 불렀을 뿐인데 정감이 넘치고 풍부한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부드러운 그의 음악적 재질은 곧 음악계의 화제가 되었다. 그와 함께 많은 작품을 같이 한 제프 바르넬이 1984년 그를 발탁했고 그로부터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에는 그리 긴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5년 최대 히트작인 [Le Geant De Papier(종이거인)]를 발표해 프랑스 샹송 오스카상을 획득하는 쾌거를 누리게 된다. 이 상은 그 해의 최우수곡, 최고 인기곡에 돌아가는데, 역대적으로 니꼴라페락, 질베르 베꼬, 자니 알리데이, 프란시스 가브렐, 쥘리앙 끌레르 가은 스타들이 이 상을 거머쥐었다.
라퐁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Le Geant...]는 샹송의 최대 매력 중의 하나인 아름다운 가사가 돋보이는 곡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동화 속의 거인처럼 용감무쌍하게 이떤 것이라도 해낼 수 있지만 막상 그녀를 대할때면 거인이란 힘에 어울리지 않게 종이처럼 유약해지는 남성의 심정을 그렸다. 사랑 고백에 있어 은유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듯 직설적인 표현법에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오히려 간지럽다 할 만큼 낭만적인 정취가 물씬 풍긴다. 이 노래의 발표이후 프랑스 사회에서도 한동안 잊었던 고전적 사랑방법이 재현되는 등 라퐁은 '사랑의 전령사'로 이곡의 효력을 100% 발휘했다 한다.
이 노래 외에도 'Le dieble au coeur', 'Elle voit', 'Ne laissez pas le soleil se coucher' 등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그야말로 정통 발라드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발라드는 부드럽지만 힘없이 유약하지는 않고, 절실하지만 청승맞을 정도로 애절하지 않고, 낭만적이지만 지나치게 몽환적이지는 않다. 몇몇 곡돌은 아다모의 발라드곡 같은 느낌을 풍기기도 하는데 어쨌든 그의 음악은 한 시대의 유행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것처럼 보인다. 이 음반이 발표되던 1985년에도 그의 음악 스타일은 주류가 아니었지만 지금들어도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은 바로 그 유행과는 무관한 음악풍 때문이 아닌가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