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First Time I See The Dance
2. A-1
3. A-d1
4. Complex Audio Signal
5. T.r(original Version)
6. A-4
7. Bull
8. A-3
9. Outro

이 땅에 테크노의 열풍이 몰아닥쳤던 것이 과연 언제였나 싶다. 이미 지난 세기의 일이니 기억에서 묻힐 만도 하다. 돌아보면 유로 테크노라는 이름을 빈 유로 하우스 댄스 넘버들에 약간의 손질(셈플링 혹은 가져다 배끼기)만이 가미된 클럽 댄스 트랙들이 몇 곡 히트했던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목에 짜집기로 끼워 넣은 조악한 편곡으로. 하지만 그 전부터 그리고 그 후로도 홍대나 압구정의 클럽에서 밤을 새웠던 수많은 레이버들은 이미 다 꿰 뚫고 있었다. 전자 악기로 만든 모든 음악이 테크노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거칠게 말해 테크노는 반복적이고 단순한 리듬 트랙과 미니멀한 구성 그리고 극히 절제된 보컬로 만들어지는 음악이다. 가장 비인간적인 소음의 조각들로 빚어내는 인간적인 사운드이 향연. 한국에도 토종 테크노가 있었던가 하는 질문은 우문(愚問)이다. 말도 안 되는 오버그라운드 테크노는 일단 무시해 버려야 하므로 두 손꼽아 남는 손가락이 많을 듯 하긴 하다. 클럽 신의 레이브 파티를 위주로 활동해 온 테크노 뮤지션들과 DJ들에게 박수를. 1996년 경부터 한국 테크노 제1세대들이 그 척박한 토양을 갈고 닦기에 무단한 수고를 해야 했다. 1999년 제2세대들이 싹을 티웠을 때 그 땅이 옥토로 바뀌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지만. 대신 보다 더 수월한 작업이 가능해 졌던 것은 사실이다. 기사거리가 궁했던 각종 매체의 궁핍함 덕에 예상치 못했던 스포트라이트마저 받았던 이들도 있다. 이들은 각종 컴필레이션 음반 작업에도 이름을 내밀었고 잦은 레이브 파티를 통해 팬들마저 확보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해 정도는 받을수 있었고 마냥 전처럼 외롭지만은 않았으니 말이다.
트랜지스터헤드(Transistorhead)라는 예명으로 첫 앨범을 발표한 민성기 역시 그런 축이다. 한국 테크노의 메카라는 홍대 앞 클럽 신에서는 가장 촉망받는 뮤지션 가운데 하나다. 그는 홍대 재학 시절 디자인을 전공했다. 학교 축제때 레이브 파티를 시도했던 적도 있지만 졸업 후에는 광고 디자이너로 살았다. 그는 디지틀 조선 일보의 정보 섹션 한 페이지를 메운 만화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범적인 생활로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이 갖춰 진 후 그는 다시 본연의 길로 돌아왔다. 일단 모 CF의 광고 음악을 멋지게 완성해 인정받았고 달파란 등과 함께 <펌프 기획>이라는 기획사를 세워 한국 최초의 레이브 파티라는 <문스트럭 ‘99>를 성황리에 마친다. 기획자로써가 아닌 뮤지션으로써의 그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도 이 행사를 통해서다. 인디 록 컴필레이션 앨범인 OPEN THE DOOR에 참여해 노이즈가든(Noizegarden)의 ‘혹성탈출’을 리믹스했고 국내 최초의 테크노 컴필레이션 앨범인 TECHNO@KR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 ‘T.R.’은 앨범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때 얻은 수많은 칭찬과 격려들이 기폭제가 되어 그는 한일 테크노 뮤지션들이 공동으로 작업한 P.L.U.R. 앨범에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데뷔 앨범 HOUSOLOGY가 출시되었다. 워낙 정식으로 앨범이 발매되는 경우가 드물다보니 이를 두고 그가 오버 그라운드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앨범의 타이틀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는 하우스(House)라는 장르를 파고들어 후세에 배움을 남기려 드는 듯 하다. 지겨우리 만큼 정직한 정 사박자의 비트 잔치 그리고 노래 잘 하는 여성 가수의 보컬로 대변되는 하우스가 이미 그 원형을 탈피해 다양한 변종으로 분화된 지 오래다. 그는 그 가운데 테크노와 교배되어 탄생한 테크하우스를 파고 들고 있다. 앨범 디자인도 과거 경험을 살려 트렌지스터헤드 자신이 직접 했다고 한다. 굵고 거칠어 직선적인 느낌이 강한 공격적 사운드들이 가득 하다. 리듬 트랙은 단순하지만 강하고 성(性)적이고 중독성이 농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