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For Minors Only (j.heath)
2. Minor-yours (a.pepper)
3. Resonant Emotions (j.heath)
4. Tynan Tyme (a.pepper)
5. Picture Of Heath (j.heath)
6. For Miles And Miles (j.heath)
7. C.t.a. (j.heath)
8. Tynan Time (bonus Track)
9. Minor Yours (bonus Track)
10. The Route (bonus Track)

 

 

고독한 재즈의 감성을 대표했던 두 거장, 쳇 베이커와 아트 페퍼! 재즈의 황금기였던 56년 당시, 이들의 만남은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젊은 영혼을 교류함과 동시에 아름다운 젊은 날의 초상을 재즈로 담아낸다. 한 동안 희귀음반으로 고가에 거래되던 컬렉터스 아이템이자 놓쳐서는 안 될 역사적 명반. AMG : **** 1/2

아름다운 젊은 날의 초상 - Chet Baker & Art Pepper [Playboys] -

재즈 듣기의 기쁨을 한두 가지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역사 속에 겹겹이 쌓인 많은 명작들 덕에 떠나게 되는 과거로의 여행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미 숱한 과거의 흔적들이 시공을 초월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멈출 수는 없는 일. 세월 속에 파묻혀 우리의 새로운 손길을 기다리는 명작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만 공허해지는 이즈음의 세태를 생각하면 더없이 낭만적이다. 낭만을 잃어버린 시대. 낭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철모르는 아이들의 흙장난인 양 치부해 버린 이 시대에는 더욱 그에 대한 갈망이 심해지게 마련이다. 이제, 바로 그렇게 우리 앞에 놓인 또 한 장의 아름다운 초상을 만나보려고 한다. 트럼페터 쳇 베이커(1929/12/23~1988/05/13)와 앨토 색소포니스트 아트 페퍼(1925/09/01~1982/06/15)의 [Playboys]. 반세기 전에 녹음된 이 작품이 아직도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다시 과거로 여행을 떠난다.

1952년 가을, 쳇 베이커는 제리 멀리건 쿼텟의 일원으로 ‘My Funny Valentine’을 연주하며 일약 LA의 스타로 떠올랐다. 우리에겐 워낙 친숙한 이 곡이 처음 재즈 스탠더드로 연주된 것이 바로 그를 통해서였다. 쿨 재즈 계열의 모던 재즈가 비로소 정착하던 바로 그 시기에, 쳇 베이커의 등장은 비밥의 육중한 무게를 견디지 못하던 당시 음악인들과 재즈 팬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 주었다. 일견 연약해 보이는 톤으로도 능숙하게 무대를 장식하던 쳇 베이커는 이후 30여 년 동안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 받는 재즈 음악인의 한 사람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비록 숱한 삶의 부침을 겪으며 나락으로 떨어질 뻔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1960년대 초까지 그가 남긴 여러 작품들 중에는 자신의 리더작 외에도 뜻이 맞는 벗들과 의기투합하여 완성한 보석들이 몇 있는데, 지금 만나보게 되는 [Playboys]는 그 중에서도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히는 명작이자 쳇 베이커의 성장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폴 데스몬드나 리 코니츠가 전체 모던 재즈의 발전에 막대한 업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되는 반면, 아트 페퍼는 넘치는 매력을 지닌 연주자였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경향이 있다. 쳇 베이커도 그랬지만 그는 워낙 심한 마약 중독으로 생의 절반은 날려버린 문제아 중의 문제아였다. 그러나 그의 앨토 색소폰 톤은 언제 어디서든 살아 꿈틀대는 생명체의 모습을 한 채 듣는 이들을 전율케 했다. 대체로 1950년대 후반이 그의 전성기로 일컬어지지만, 자신의 음악성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려놓은 1950년대 중반과, 오랜 공백을 깨고 화려하게 재기한 1970년대 중반 이후의 연주들은 재즈 팬들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바꿔 말하면 대부분의 매체들이 그 가치를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는―아름다운 음악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그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화려한 프레이징의 구사 능력 또한 빼놓을 수 없을 듯. 아트 페퍼는 바로 그렇게 모던 재즈가 고이고이 간직해 온 또 하나의 정점이다.

[Playboys]는, 독자적인 행로를 걸어온 쳇 베이커와 아트 페퍼가 자연스럽게 교차한 1956년의 찬란한 역사적 순간을 담고 있다. 이들은 그 전에도 몇몇 빅 밴드 연주에서 함께 무대에 선 적이 있었지만, 특히 1956년 7월과 10월, 두 차례의 섹스텟 녹음을 통해 연주나 기획,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눈 뗄 수 없는 매력을 선보였다. 당시의 녹음은 두 장의 독립된 앨범으로 발표됐고, 7월의 녹음을 담고 있는 것이 [The Route], 그리고 10월의 녹음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 만나는 [Playboys]이다. [The Route]는 최근까지 여러 유통망을 통해 비교적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작품으로 남아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Playboys]는 한동안 절판돼 있었던 터라 이번에 국내에서 제작된 것이 재즈 팬들에게는 또 하나의 기쁨으로 다가올 듯하다. 한 때 이 작품은 [Picture of Heath]라는 타이틀로 재발매된 적도 있는데, 이 10월의 녹음에서 연주된 곡들이 대부분 색소포니스트 지미 히스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스타일과 무관하게 여러 음악인들과 폭넓은 교류를 가진 지미 히스는―형인 베이시스트 퍼시 히스와 동생인 드러머 알버트 히스도 큰 업적을 남겼다―연주 뿐 아니라 작곡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이 작품에 실린 곡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한 번에 쉽게 손에 잡히는 리드믹한 멜로디의 구축에 특히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모던 재즈의 발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 피아니스트 칼 퍼킨스의 트리오를 바탕으로, 쳇 베이커와 아트 페퍼 못지않게 이 세션에서 큰 역할을 해내고 있는 테너 색소포니스트 필 어소의 연주에도 반드시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그는 분명 부당하게 과소평가된, 숨겨진 명인의 면모를 지녔던 인물이다. 관악기를 담당한 세 사람은 이 작품을 녹음할 때 매우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세 사람의 솔로도 물론 일품이지만, 이 관악 연주자들이 이루어낸 조화로운 앙상블이 작품의 가치를 한껏 드높인다. 재기발랄한 플레이보이들을 보라.

[Playboys]의 국내 발매를 위해 다른 멤버들과 함께 연주한 7월의 음원([The Route]) 중에서 세 곡을 추가로 준비했다. 아트 페퍼 원작의 ‘Tynan Time’과 ‘Minor Yours’, 그리고 쳇 베이커의 ‘The Route’. 이 중 앞의 둘은 [Playboys]에서도 연주된 곡들이라, 석 달의 시간차를 두고 다른 멤버들로 구성된 앙상블을 비교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참고로 [The Route]에서 필 어소 대신 참여했던 리치 카무카 또한 특기하지 않을 수 없는 연주자이다. 그 풍부한 블로윙과 안정적인 프레이징은 필 어소와 마찬가지로 더 늦기 전에 우리가 꼭 짚어봐야 할 대가의 존재를 다시 전해주고 있다. 이 작품들을 계기로, 쳇 베이커와 아트 페퍼는 리더급 음악인으로 거듭 났다. 막상 이듬해인 1957년을 보더라도 두 사람의 위상이 얼마나 크게 높아졌는지 역사는 이미 충분한 해설을 덧붙이고 있지 않은가. 그렇듯 아름다운 두 청춘의 풋풋한 초상이 바로 [Playboys]에 담겨 있다. 눈부시다, 오늘날에도.

글 / 김 현 준 (재즈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