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놀랄만한 성장을 보여주는 밴드가 있는가 하면 놀랄만한 퇴보를 거듭하는 밴드도 있게 마련이다. 자우림은 이 두 가지 모두에 해당되는 몇 안 되는 팀 가운데 하나일 텐데, 본작은 이어지는 3집과 함께 그들의 음악적 꼭지점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미안해 널 미워해’는 아마도 자우림이 쓴 곡들 중 단연 베스트에 손꼽힐 만한 록 수작이며 이 외에 노숙자 문제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이런 데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요', 청소년 자살을 소재로 한 '낙화' 등, 곡 전반의 수준이 상층부에서 고른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하하하쏭’과 ‘You And Me’를 연주하고 있는 자우림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자우림이 맞나 하는 심정적 괴리감에 있으며 이 때문에 본작이 건져 올린 높은 수준도 더불어 사장될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이 간극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자우림이 우리 록 역사에 인상적인 여진을 남길 가능성은 유사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