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very Day There`s Something (relaxomatic Project)
2. Porcelain (moby)
3. Trouble (coldplay)
4. Sonnet (verve)
5. Wonder (embrace)
6. Sure Thing (st. Germain)
7. Couldn`t Cause Me Harm (beth Orton)
8. Weather Storm (massive Attack)
9. Sleep Again (brothers In Sound)
10. Tender (blur)
11. At The River (groove Armada)
12. We Haven`t Turned Around (gomez)
13. Fake Plastic Trees (radiohead)
14. Emergency (turin Brakes)
15. Fade Into You (mazzy Star)


`나른한 일요일`이라는 타이틀에 푸른색 소파 하나.
트랙 리스트를 보지 않은 채 플레이어에 CD를 넣어보자.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음악인데 누구의 것인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잠시 이걸 어디서 들었더라, 더듬어보지만 곧 포기하게 된다. 스피커 가득 쏟아지는 규칙을 살짝살짝 비켜가는 부드러운 리듬, 몽롱한 신서사이저의 멜로디들…… 이대로 잠들어버릴 것 같다. 삐져나오는 하품을 굳이 참을 필요도, 이유도 없다. 겹친 팔을 베고, 소파에 가로로 길게 누워서 음악을 흘려도 좋다. 최소한 2번째 트랙까지는 이 상태가 가장 훌륭한 이 음반의 감상 방법이다.
3번째 트랙부터는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인트로를 듣는 순간 `아, 콜드플레이군.`, 5번까지 이어지는 트랙들 모두 요즘의 브릿팝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포크 계열의 어쿠스틱한 모던 록밴드들의 대표곡들이다. 6번에서 다시 낯선, 하지만 편안한 사운드가 나직이 흘러나온다. 처음 틀었을 때 들었던 느낌들이다. 조금 더 이런 분위기로 가다가 다시 익숙한 모던 록 사운드가 주욱 배열되어 있다.
모던 록과 일렉트로닉 계열의 트랜스, 테크노, 하우스 재즈 등의 장르를 섞어놓은 이 음반은 트랙 리스트트만으로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알다시피 록을 듣는 집단과 일렉트로닉을 듣는 집단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둘을 모두 겨냥한 음반이라 사실상 자살 행위에 가깝다.(케미컬 브라더스는 물론 예외다.) 이 음반은 바로 그런 행위를 버젓이 하고 있다. 애초에는 오스트리아에서 만들어진 음반인데, 우리나라에서 라이센스로 제작되면서 트랙이 몇 개 바뀌었다고 하나 기본적인 틀은 그대로이다.
이 음반은 컴필레이션 음반이고, 기본적으로 매니아보다는 음악의 기능성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일반 대중들을 겨냥해서 만든 음반인 듯 하다. 이 음반에서는 모던 록과 일렉트로닉 트랙들은 앨범 타이틀처럼 그저 나른한 분위기, 무긴장 상태, 생각없이 흘릴 수 있는, 낮잠을 청할 때 틀어놓으면 좋은 소리들로 환치되어 버린다. 그 트랙들의 주인공이 라디오헤드, 콜드플레이, 매시브 어택, 모비, 세인트 저메인 등 영국과 유럽의 현재를 대표하는 짱짱한 뮤지션들이라고 해도 전혀 달라질 게 없다. 애초에 음악이 가지고 있던 `나른함`을 끄집어내어 배열해냄으로써 이 음악들은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컴필레이션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일상에서 날을 바짝 세우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혼자 힘으로는 긴장을 풀지 못 하는 사람이라면 이 음반은 그 어떤 신경안정제보다 탁월하게 약효를 발휘할 것 같다.
나른하게, 부드럽게, 기분 좋게 무장해제 당하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