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터팬 신드롬
2. 나비
3. 빨간 망토와 늑대 인간
4. Everything I Need
5. 내 마음 속의 작은 새

이나인(E9)은 2011년 4월 기타와 보컬을 맡은 이나인이 결성한 밴드로 베이스에 이윤재, 그리고 드럼이 창윤우, 이렇게 3인조 라인업이다. 결성과 함께 홍대의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2012년 2월 ‘나비’와 ‘내 마음 속의 작은 새’를 발표한 바 있다. 밴드의 이름(E9)은 두 단어의 합성어로, 가위손(Edward Scissorhands)의 ‘E’와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Nine’에서 착안했다. 순수함과 광기의 공존을 의미하는 이 합성어는 밴드의 지향점을 알려주는 복선과도 같다. 교집합이 없어 보이는 데니 엘프만(Danny Elfman)이 맡았던 O.S.T.의 인상적인 오케스트레이션과 기계음 섞인 강렬한 NIN의 음악이지만, 이나인은 자신들의 음악을 통해 두 음악 사이의 극단적인 피크가 가리키는 피치를 완만한 곡선으로 만들며 절충점을 만들려는 노력을 보인다.


기본적으로 이나인의 음악은 그런지 사운드를 모체로 하고 있지만, 시애틀 특유의 눅눅함은 신서사이저의 효과적 사용으로 희석된다. 이는 인더스트리얼메틀의 압도적 중압감을 중화시키며, 플로어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신스팝의 경박한 부분을 거세한 중도적인 음악, 즉 앞서 언급했던 ‘절충점’이라는 의미와도 다름 아니다. 또 이러한 절충점에 함께 서 있는 음악들은 모던록, 이모, 펑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메뉴를 가지고 있으며, 이나인은 잘 차려진 이 뷔페와도 같은 테이블에서 자신들이 필요한 재료들을 선택적으로 취합하며 스스로의 표현 영역을 확장시킨다. 가사에 있어서도 분노를 과도하게 표출하기보다는 ‘피터팬 신드롬’이나, ‘빨간 망토와 늑대 인간’처럼 소년의 감수성 가운데 녹이는 우회적, 혹은 우화적 접근을 시도한다. 언뜻 들리는 원색적인 표현도 전체적인 흐름 가운데에서는 누구나 공감할 상황을 만들어낸다.


클린톤의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와 현악의 아름다운 조화가 도입부를 이끄는 ‘나비’는 반복적인 멜로디의 강한 훅을 가진 클라이맥스로 청자를 환기시키며, 날카로운 날이 선 파편이 떠다니는 가상의 공간을 몽환가운데 유영하는 ‘Everything I Need’는 앞서 싱글로 발표했던 ‘내 마음 속의 작은 새’의 진화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공격적인 기타 리프와 키보드가 만들어내는 두터운 사운드의 레이어는 원래 가지고 있는 음악의 질주하는 속도감과 별개로 환각적이고 우주적인 공간감을 부여한다. 음반에서 가장 귀를 기울여야할 트랙이며, 향후 이나인의 행보에도 분명 청신호로 작용할만한 소지 역시 다분하다. 이 외에도 수록된 다섯 곡은 유사한 듯 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거리가 느껴지는 곡으로 꾸며져 있어, 갓 데뷔하는 신인 밴드의 욕심이나 의지를 그대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물론, 다양한 장르에 대한 종합적 관심은 통일성을 요구하는 청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도 있고, 밴드에게 있어서는 ‘정체성’에 관련된 문제라고 토를 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하기에 이나인이 가진 가능성은 이 짧은 EP 한 장으로도 알아차리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싱글을 발표했고, 몇몇 클럽공연을 거치기도 했지만, 밴드는 이제 시작이다. 지난 싱글과 이번 EP사이에는 확실한 성장이 존재한다. 그 이유는 밴드 스스로 미흡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에 대해 과감한 매스를 댔던 까닭일 것이다. 이렇듯 발 빠른 밴드 스스로의 움직임만 무뎌지지 않는다면, 성장은 앞서 이야기한 ‘가능성’을 담보로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이며, 음악 역시도 여타 장르의 선별적 수용이 아닌 ‘이나인 음악’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다.